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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
작가정신
막심 고리키 지음, 이수경 옮김
2014-01-06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현실과 이상, 추와 미, 그 길항 속에서 싹튼
고리키 문학의 맹아!
-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막심 고리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초기 단편소설들을 통해 그의 문학 세계의 단초를 열다!
“낡아 빠진 사람들에게 왜 새로운 해가 필요한가?
생각과 감정을 쇄신하지 않은 한 새로운 해는 없다.”
이성은 쇠약하고 무기력해졌다. 사랑은 열정적인 말도 잊어버리고 차갑게 식어버렸다. 믿음은 이리저리 깨지고 완전히 망가졌다. 진리는 학대받고 외면당했다. 독창성은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 이 모든 감정을 상실한 사람들은 왜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고리키의「마부」의 파벨, 「환영」의 포마 ,「종」의 안티프 등 거짓과 적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공허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통해 공허하고 지루한 시간의 늪에 빠져 거짓과 적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허우적대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다. 돈, 명예, 탐욕, 아름다움, 희생, 오만함, 자유분방한 삶 등 다양한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고리키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과연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든다.
원작의 사실성과 깊이, 그리고 섬세한 필체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뛰어난 원전 번역을 통해 우리는 고리키의 삶이 갖는 영향력과 러시아문학을 새롭게 창출한 그의 문학적 위상을 발견하게 된다.
고리키의 초기 단편 속에서 오늘을 읽다
한 작가가 이룩한 문학 세계가 어디서 어떻게 발아하였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러시아 고전 산책’ 시리즈 제6권 『마부』는 러시아 민중의 아들이라 불리는 막심 고리키의 초기 단편들 10편을 묶어놓은 책으로, 「이제르길 노파」 외에 9편은 모두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작품들이다. 러시아 문학과 고리키를 좋아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문학 연구자들에게도 고리키의 초기 작품들은 신선한 재미와 의미 있는 무게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러시아 고전문학의 명맥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를 지나 체호프에게서 방점을 찍을 무렵, 막심 고리키는 러시아 문학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든 작가로서 러시아 문학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1905년과 1917년의 혁명을 중심으로 흔들리는 러시아의 정세 속에서 고리키는 시대적 필연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창시했다. 어린 시절부터 체험한 하층민의 삶은 혁명에 대한 그의 의지와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갈망과 결합해 그의 문학 정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극한의 고통’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의 이름처럼 그의 소설 속에 그려진 러시아 민중과 그 삶의 비애를 살펴본다면, 당대의 사회적 배경을 떠나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성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삶의 방향에 대해 고찰하는 고리키의 시선
20세기 초, 소비에트 연방이 결성되던 당시에는 가난한 하층민들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그것은 혁명에 직접 참여하면서 러시아 인민들을 옹호하는 데 주력했던 고리키의 희망과도 같았으며, 그 시선은 그의 문학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른바 서발턴, 혹은 이 사회에서 어떠한 지위도 이름도 갖지 못한 ‘몫이 없는 자’들이 「아쿨리나 할머니」와 「푸른 눈의 여인」에 등장한다. 그날그날 먹을 것을 구걸하는 아쿨리나 할머니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자신이 거두고 있는 부랑자들의 한 끼를 염려한다. 실패한 변호사와 그의 애인, 도둑과 그의 선생, 주인의 돈을 횡령한 전과자 등 ‘사회의 쓰레기 집합소’는 당시 러시아의 밑바닥이자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낸다. 남편을 잃고 홀로 어린 자식들을 키우게 된 ‘푸른 눈의 여인’ 또한 핍진한 생활에 쫓기다가 몸을 팔아 가족의 생계와 앞길을 책임져야 하는 삶을 담담히 살아나간다.
하층민에 대한 연민과 포용의 반대편에서 고리키는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과 삶의 윤리와 실천 역시 부르짖는다. 「마부」「환영」「종」 등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살인을 통해 부를 축척하고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부유하지만 무의미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삶을 살거나, 자신의 아집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왜곡된 인간상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을 통해 고리키는 다양한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 양심의 고백과 회심으로 구원을 얻거나, 끝내 타인과 신을 탓하며 자기방어적인 삶을 살거나, 아니면 그 중간에서 고민을 한다. 이를 통해 고리키는 실천적 삶과 대안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
하류층과 상류층, 두 세계는 양극단에 있으면서도 동일하게 현실의 추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악취 나는 현실을 덮어줄 이상향으로서 고리키는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다. 「로맨스」에서 음울한 술꾼이 되어 살아가는 한 남자에게 소년 시절에 다정한 여인에 대한 첫 사랑의 기억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의미가 된다. 「아름다움」에서 어느 집 테라스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는 일은 두 남자에게 쓰레기 냄새도 잊을 만큼 강렬한 체험이 되며, 이후에도 삶에 의미를 주는 기억으로 남는다. 삶의 의미를 좇는 고리키의 시선은 따뜻한 모성과 신비로운 미(美)로서 형상화되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거장의 성찰과 해답
어떻게 살 것인가. 고리키가 던지는 이 화두는 그의 소설 전반을 꿰는 주제 의식이다. 10편의 단편들을 통해 고리키는 궁극적으로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집요한 추적을 보여준다. 「지난해」를 통해 진리가 도외시되는 세태를 비꼬면서도, 「시간」을 통해서는 인생 전반에 대한 통찰과 삶의 실천 방향에 대해 시간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고리키는 이 작품에서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의 이성과 열정을 삶에 바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삶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라고 말한다. 벽돌처럼, 건물의 부속품이 되어 가만히 놓여 있는 삶을 살지 말라고, 이성과 영혼을 통해 감성과 사고로 가득 찬 격동의 시간을 경험하라고 권한다.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열정을 갖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제시한다. 진실, 정의, 아름다움에 봉사하는 강인한 영혼 속에 온갖 아픔과 사람들의 고통을 지니고서 빛을 비추는 삶, 이것이 진정 용감한 사람들의 삶인 것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자가 있는 곳에 위대함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고리키는 공허하고 지루한 삶을 타개하고 강렬한 열망으로 생을 채워나가는 의지를 가진 거장이었다.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소년이 러시아의 문호가 되기까지 그를 지켜주었을 그 단단한 의지는, 그의 작품 속에서 세상을 두드리고 인간을 발견하며 삶을 여는 힘으로 발산되고 있다. 고리키의 작품을 읽는 즐거움은 동시에 고리키와 그의 삶의 철학을 읽는 기쁨이 될 것이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고리키는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자란 고리키는 여섯 살 때 글을 배우고, 1877년 1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외할아버지가 파산하는 바람에 열 살이 되던 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1881년 ‘선’이라는 배에서 접시닦이를 하던 그는 글을 모르는 주방장 스무리에게 책을 읽어 주며 책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고골, 네크라소프, 뒤마, 발자크, 플로베르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힘든 노동과 미래에 대한 절망을 느낀 그는 1887년 19살이 되던 해에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로 인해 만성적인 폐결핵을 앓게 된다.
그 후 고리키는 코롤렌코의 서기로 일하게 되는데, 이때 자연과학, 니체 이론 등을 공부하고, 1891년 러시아를 여행하며 칼류즈니를 만나 그의 권고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892년 9월,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며 등단한다. <마카르 추드라> 이후, 여러 단편들을 계속해서 발표하던 고리키는 여러 신문에 평론이나 칼럼을 쓰며 정치 문제를 다루게 된다. 1898년에는 단편 20편과 수필을 모은 책 ≪수필 및 단편집≫을 출간해 문학적 명성을 얻었으나, 지속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해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고리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가열되는 학생 데모와 파업을 봉쇄하기 위해 학생들을 탄압하는 정부를 비파해 세 번째로 수감된다. 톨스토이는 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고리키는 감옥에서 <바다제비의 노래>를 발표해, 이 작품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혁명의 노래처럼 불리게 된다. 1902년 ≪소시민≫과 ≪밑바닥에서≫가 초연되고, 1904년 ≪별장족들≫을 저술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05년 1차 혁명을 목격하고 차르 정부를 비난하고 결국 유형을 당한다. 1906년에는 차르 정부의 러시아 차관을 차단하는 활동을 해 러시아로의 귀국이 허용되지 않아 1913년까지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한다. 1913년 로모소노프 가문 300주년 기념 특사로 사면을 받은 고리키는 페테르부르크로 가 문학·정치 활동을 계속하다가 다시 외국으로 나가기를 권유받게 되며, 1913년 영구 귀국 할 때까지 이탈리아의 소렌토에 살게 된다.
다난하고도 복잡한 삶을 살아 온 막심 고리키는 1936년 6월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68세의 일기로 자신의 생애를 마쳤다. 이틀 후 스탈린 등의 국가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국장으로 그의 장례가 치러졌고, 그의 시신은 크레믈 벽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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